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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Foreigners Everywhere’ 핵심 소개

    60주년을 맞이한 베니스 미술 비엔날레, 올해는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비엔날레 역사상 첫 남미 출신 예술 감독으로 자리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올해의 주제는 ‘Foreigners Everywhere(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입니다. 프리오프닝이 시작되는 4월 17일부터 29일까지, 12일 동안 100개가 넘는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비엔날레에서 한국 미술은 어떤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 어떤 전시가 흥미로운지 등 오븐에서 막 나온 따끈한 제60회 베니스 미술 비엔날레 미술 소식을 구워 전합니다.

    제 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자르디니 본전시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첫번째 작품 ©전혜림

    60주년을 맞이한 베니스 미술 비엔날레, 올해는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비엔날레 역사상 첫 남미 출신 예술 감독으로 자리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올해의 주제는 ‘Foreigners Everywhere(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입니다. 여기서 이방인은 난민, 외국인, 이민자뿐만 아니라 사회 내에서 소외되어 온 퀴어, 선주민 등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술 감독은 이 주제로 300명이 넘는 작가를 데려와 본전시를 기획하고, 84개국은 해당 주제 내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 외에 동기간에 진행되는 병행전시(비엔날레 공식 인증)와 평행전시(개별 진행)까지 합하면 비엔날레 기간에 진행되는 전시는 대략 200개가 넘습니다.
    작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를 위해 프리오프닝 기간부터 약 2주간 베니스에 머물며 거의 모든 전시를 다 본 후, 프린트 베이커리 웹진을 통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즐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을 소개한 바 있는데요. 이번에는 미술 비엔날레를 섭렵하기 위해 프리오프닝이 시작되는 4월 17일부터 29일까지, 12일 동안 100개가 넘는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비엔날레에서 한국 미술은 어떤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 어떤 전시가 흥미로운지 등 오븐에서 막 나온 따끈한 제60회 베니스 미술 비엔날레 미술 소식을 구워 전합니다.


    호주 내셔널 파빌리온 《kith and kin》 ©전혜림

    국가관 황금사자상의 주인공, 호주관 《kith and kin》


    격년으로 개최되는 베니스 미술, 건축 비엔날레는 매년 최고의 참여자에게 황금사자상(Golden Lion)을 수여합니다. 2024년 국가관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은 호주관 《kith and kin(친족과 친척)》입니다. 호주 선주민 카밀라로이(kamilaroi)와 비갬불(bigambul) 혈통의 예술가 아키 무어(Archie Moore)는 6만 5천 년간의 호주 선주민 가계도를 전시장 벽 전체에 분필로 직접 그려 넣었습니다. 어두운 전시장 벽에 선주민의 이름이 가득 채워져 있는 모습은 심사위원의 말처럼 “조용하지만 강력”합니다. 하나의 거대한 기념 공간으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고 있죠.
    가계도 중간에 커다란 원으로 이름이 지워진 구멍은 식민 역사가 남긴 학살, 질병, 고의적 기록 파기로 인한 혈통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전시장 중앙에 하얀 종이 더미는 작가가 4년간 이어온 리서치 자료인데, 검은 물웅덩이가 사면을 감싸고 있어서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웅덩이는 벽면의 가계도를 영하는 동시에 자료와 관객 사이에 거리를 두어 희생자들의 익명성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셔널 파빌리온 《KOO JEONG A – ODORAMA CITIES》 ©전혜림

    한국관 《KOO JEONG A: ODORAMA CITIES》 


    올해 한국관은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인 야콥 파브리시우스와 덴마크 쿤스트할 오르후스 큐레이터인 이설희가 공동 예술감독을 맡아 구정아 작가의 단독 개인전 《KOO JEONG A: ODORAMA CITIES(오도라마 시티)》를 기획했습니다. ODORAMA(오도라마)는 ‘odor(향기)’와 드라마의 ‘rama’를 더한 단어로, 우리가 냄새와 향기로 시공간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탐구하는 전시입니다.
    텅 빈 듯 보이는 한국 파빌리온 곳곳에는 ‘한국의 냄새 풍경’이 숨어있습니다. 일반 대중 600명의 사연과 키워드로 바탕으로 16명이 조향사가 16개의 향을 개발했으며, 관객은 공간을 거닐다가 이 냄새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시장 한편에는 구정아 작가가 2017년에 작업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우스(OUSSS)’가 3차원의 조각상으로 등장해 부유하는 듯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스의 콧구멍에서는 16개의 향을 합한 1개의 향 ‘오더라마 시티’가 분사됩니다.


    일본 내셔널 파빌리온 《Compose》 ©전혜림

    일본관 《Compose》 


    이번 미술 비엔날레에는 한국 큐레이터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습니다. 먼저, 일본관입니다.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 이숙경 예술감독은 ‘함께 구성한다(to place together(com+pose)’는 뜻의 《Compose》를 제목으로 일본 작가 모리 유코(Mohri Yuko)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모리의 설치물 ‘More More(Leaky)는 플라스틱 병, 호스, 양동이 같이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물건들 사이로 의도적으로 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누수가 자주 발생하는 도쿄 일본 지하철 역사 직원들이 임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급히 생활용품으로 물을 받는 등 기발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요. 모리의 작품은 일본 도쿄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를 가져와 지역적 특색을 담아내는 동시에, 베니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홍수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전시는 위기가 발현시키는 사람들의 창의성과 그들의 노력이 드러내는 희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적 위기에서 우리가 함께 존재하고 일한다는 것(compose)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내셔널 파빌리온 《Seeing Forest(숲을 보다)》 ©전혜림

    싱가포르관 《Seeing Forest》 


    두 번째는 싱가포르관입니다. 이 국가관은 싱가포르아트뮤지엄(SAM) 선임 큐레이터 김해주가 예술 감독을 맡았습니다. 《Seeing Forest(숲을 보다)》는 로버트 자오 런휘(Robert ZHAO Renhui)가 자신이 머물던 아파트에서 보이는 ‘2차림(secondary forest)’을 장장 7년간 관찰하고 연구한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2차림은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숲이 아닌, 인간의 간섭 등으로 인해 2차적으로 발달한 숲입니다. 그 안에는 인간이 남기고 간 인공물, 외부에서 유입된 동식물 외래종 등 이방의 존재들이 공존하죠. 동물은 인간의 쓰레기를 생활에 활용하고, 나무는 쓰레기를 비집고 다시 자라나고, 인간은 또다시 자라난 숲을 벱니다. 그러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식물도, 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자연도, 그곳을 여행하는 작품 속 인간과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도 모두 2차림의 여행자이자 이방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원래부터 있던 것일까요? 그것이 그리 중요할까요? 이렇게 작가와 큐레이터는 경계에 있는 존재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자르디니 본전시에서 만난 김윤신 작가의 작업 ©전혜림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의 본전시 속 한국 작가 (1) 김윤신


    한국인 큐레이터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들의 존재감도 대단했습니다. 작고 작가 이쾌대, 장우성을 포함하여 생존 작가 김윤신, 이강승까지. 4명의 한국 작가가 총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꾸린 본전시에 초청되었습니다. 
    전시장 한가운데에 김윤신 작가의 나무와 돌 조각품이 보입니다. 한국 1세대 조각가 김윤신은 1980년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한 후, 남미를 중심으로 40년 넘게 자연을 소재로 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거친 껍질을 그대로 살린 나무에는 작가의 톱질로 큼지막한 패임들이 생겼지만, 그 모습이 연약해 보이기는 커녕 단단함과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쪼개고 다듬어진 돌조각 또한, 어디서든 그렇게 존재할 것만 같은 힘을 가진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자르디니 본전시관 바닥과 벽을 채운 이강승 작가의 작업들 ©전혜림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의 본전시 속 한국 작가(2) 이강승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강승 작가의 작업 또한 자르디니 본전시관 바닥과 벽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강승은 퀴어 역사와 미술사가 교차하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이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는 삼베에 금사로 수를 넣고 나무 캔버스 판에 수어를 새겨 넣는 등 아름다운 은유를 통해 소수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장우성과 이쾌대의 작품이 자르디니 본전시관에 나란히 걸려있다. ©전혜림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의 본전시 속 한국 작가(3,4) 이쾌대, 장우성


    이쾌대(1913-1965)와 장우성(1912-2005)의 작품은 본전시 ‘Nucleo Storico(historical nucleus, 역사적 핵심)’ 섹션에 자리했습니다. 이 섹션은 지금까지 미술 역사에서 주변부로 소개되었으나 사실 발전의 중심에 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동, 남미 작가들의 20세기 중후반 초상화를 모아둔 곳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대형 미술관, 갤러리에서 늘 마주하던 백인의 초상화가 아니라 전시장 한가득 낯설지만 익숙한 이들의 모습이 보여서 흥미로웠습니다. 동시에, 예술 세계가 서구 선진국, 식민 지배국의 시선과 힘 아래에서 작동해 왔음을 실감했고요.


    네덜란드 국가관 앞, 이틸리아어로 네덜란드를 뜻하는 ‘Olanda’ 글자 위로 페인트가 흐르고 있다. ©전혜림


    네덜란드관 《The International Celebration of Blasphemy and the Sacred》 


    어떤 국가는 자신의 국가관 전시장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사실 2022년 59회 비엔날레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요. 그때 네덜란드는 에스토니아에게 베뉴를 넘겨주고 자신들은 자르디니 공원을 벗어나 외부에서 전시했고, 북유럽 3국(판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  돌아가며 전시하는 ‘노르딕 파빌리온’이 세 나라를 오가며 생활하는 북극 지방 사미족 선주민이 전시할 수 있도록 하며 ‘사미 파빌리온’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올해도 네덜란드는 콩고의 루상가(Lusang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컬렉티브 CATPC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루상가는 과거 영국과 네덜란드 계열의 회사가 땅을 갈취해 팜유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던 장소로, 이러한 착취 역사를 드러내기 위해 작가들은 팜유, 코코아, 설탕을 이용해서 조각품을 만들어 전시했습니다. 전시장 곳곳에 흐르는 노란 페인트는 화이트 큐브, 미술관, 전시장의 깨끗한 벽 뒤에는 불법적인 배경과 돈이 존재함을 나타냅니다. 이 외에 덴마크 국가관 또한 그들이 200년간 식민 지배를 했던 선주민 부족(Kalaallit Nunaat, 그린란드)이 파빌리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좌) 이스라엘 국가관 앞을 지키는 군인들, (우) 볼리비아에 자리를 내준 러시아 국가관 ©전혜림


    전쟁 속 비엔날레, 러시아관과 이스라엘관


    세계의 여러 문제를 꼬집고 숨겨진 진실을 끄집어내어 예술로 다시 발화하는 비엔날레인 만큼 전쟁 또한 큰 영향을 미칩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큐레이터와 작가가 전쟁을 반대하며 참여를 거부한 탓에 2022년 미술 비엔날레에는 국가관 문을 닫았습니다. 2023년 건축 비엔날레도 마찬가지였고요. 올해는 우호 관계인 볼리비아에 파빌리온을 빌려주었으나, 많은 예술인이 보이콧의 의미로 들어가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편, 이스라엘관은 “이스라엘 예술가와 큐레이터는 정전 및 (이스라엘-하마스) 인질 석방 합의가 이뤄지면 전시관을 열 것"이라는 안내문이 붙이고 무기한으로 전시 오픈을 미루었습니다. 


    오프투베니스(offtovenice.wordpress.com) 사이트, 매일 진행된 비엔날레 합평회 노트를 볼 수 있다. ©전혜림


    제60회 비엔날레에는 오늘 소개한 국가관 외에도 이야기되지 못했던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문제를 지적하는 좋은 전시를 진행하는 국가관이 정말 많습니다. 꼭 국가관이 아니더라도, 동기간에 베니스 여러 곳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전시 또한 지금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세계를 더 넓게 보라 일러주고 있지요. 그중에는 분명 귀담아듣고, 알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이걸 왜 몰랐지?”하면서요.
    하지만 200개가 넘는 전시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직접 가서 듣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비엔날레를 가장 경제적으로 즐기는 방법은 선행자의 기록을 쫓아가는 것이겠죠. 좋은 선행자의 기록으로, 다양한 직업 종사자들이 12일간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고 매일 진행한 합평회를 공유하는 ‘오프투베니스(offtovenice.wordpress.com)', 그리고 4월 프리뷰 시작부터 5월이 지난 지금까지 베니스에 머물고 있는 크락티(@crakti)를 추천합니다. 먼 곳에서 가까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잠입해 봅시다.



    WRITER 전혜림 EDITOR 조희연 DESIGNER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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